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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딜수 없는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2011/01/08 17:38 | Posted by being 물고기자리

Review of :
1. 광야의 인간, 송봉모
2. 주여,왜  ? , 카를로 카레토, 김형민 옮김.
3. 고통의 문제,  C.S Lewis

제목은 거창하지만, 사실 알고 있다.
정말 고통으로 가끔 숨쉬는것조차 ( 물리적으로나, 혹은 정신적으로나) 버거울때,
옆에서 아무리 좋은말해줘도 씨도 안먹힌다는것.

아니, 어쩌면 신심이 깊고, 착하디 착한 사람들은, 내가 이런 고통을 느낌으로써 이 세상이 좀더 좋은 곳이 될거야, 혹으 천국에 갈수 있을거야 ..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것은 나는 아니였다. 아무리 좋은 분들이 좋은말 해줘도,
나는 냉소적이였고, 비관적이였다.
도대체 " 왜, 내가 ... "  "왜 나야 ... " 라는 생각만 가득하고,괜시리 억울함에 눈물을 쏟은것도 수백번이였다.

지금도, 그래도 나름 젊은 나이에 왜 내가 .. 라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흐르다 보니, 조금씩 낳아진것 같다. 그리고 그토록 주변사람들이 말하던 시각이 달라진다는 말이 조금씩 이해가 가기도 한다. 그리고, 고통이란건 모든사람들에게 있는 공통분모 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고통의 무게는 모두에게 다르기도 하고 객관적일수는 없는것이다.  어떤사람은 암투병을 해도 비교적 밝을수도 있고 5살 짜리 어린아이에겐 지금 당장 무릎이 까진것이 세상에 태어나 가장 큰 고통으로 느껴질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나에게 주어진 고통의 무게가 아마도  그당시에 내가 감당할수있는 한계였던것 같다.  

어쨌든,  우리 모두가 느끼는 "견딜수 없는 고통", 그리고 특히 깊은 신앙인이 아닌,  부끄럽지만 소위 얕은 신앙인인 내가, 왜 신앙인임에도 왜. .하면서 이해할수 없었던 그런 고통에 대해서 3명의 저자는 말을 했다. 
"해답은 없다" 고. 

고통엔 해답이 없다. 그럼 ..?! 

솔직히 어이가 없었다. 그전에 내가 신앙심이 깊으신 분들에게 여쭤보면 "욥기를 읽어라" 라고 그렇게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었다.  한 3번쯤 읽었나, 하지만 난 이해가 도저히 안됬었다. 음 ..... 그래.... 악마가 장난치겠다, 그러니깐 하느님이 그래한번 해봐라, 해서 가족들 다 죽이고, 돈, 명예 다 빼았기고, 몸마저 흉하고 고통스럽게 만들어버렸다. 
그래도 욥은 약간 징징거리긴 했으나 하느님 배신 안하고 견디다 보니깐 하느님이 더 큰 재물과, 명예와 가족들(... ) 까지 주신...  이게 내가 이해한 욥기 였다. 
내 머리속엔 계속, 개죽음 당한 그 아들들은 ??  이생각밖에 안들고, 욥보다도 그 아들들과 내가 더 동일시 생각도 되고, 욥과 하느님의 대화가 솔직히 잘 이해되지 않았다.  

여전히 난 욥기가 이해안된다. 고통에 관해서 가장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해답을 제시하는 장 이라고 하지만, 지금도 그렇고 아마도 한동안은 이해가 안될듯 싶다. 하지만 이번에 읽게된 3권의 책은 욥기 뿐만 아니라, 고통 그자체에 대해서도 많이 풀이해놓은 책이다. 그리고 , 여전히 공통적인것은, 고통에대한 해답은 없다는것이다. 

내가 왜 고통을 당하는것인지, 왜 이렇게 견디기 힘들어하는것인지..  그 이유를 알고싶어하고 왜 왜 왜 를 질문하면, 종교는 답을 제시하기가 힘들다는것이다. 적어도 이 세상에서, 물질적인 것으로는 말이다. 하긴, 난 순교자의 삶이 이해가 안됬고, 모든사람의 짊어질 고통은 공평하다는 말도 이해가 안됬고 거기에 불만불평이 가득했다. 
아니, 당신을 믿는 사람들에게 왜 이런 고통을 가하고, 아니 저기 저 엄친딸, 엄친아는 뭐가 그렇게 이뻐서 저런 삶을 살고 있는겁니까.  왜왜왜왜왜왜왜왜.   

많은 책에서는 고통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대해서 말을 했다. 그리고 종교가 제시할수있는 답변은 여기에 많은 부분이 있었다. 내가 왜 고통을 겪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신앙이 어떻게 힘이 되는지, 그리고 이 고통이 하느님이 은총이라는 발상  (난 이거 제일 싫어했다... 아니, 은총이라면 그냥 안받고 편안하게 살고 싶다. 그러니 제발 제발 거둬 가세요 라고 ..  ) 에대해서 또 많은 설명이 더해졌다. 

왜 고통이 은총인가 

내가 제일 싫어하는, 그러나 지금은 조금씩 이해가 되려고 하는, (아직 완벽히는 이해 못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난 신앙심이 그다지 깊지 않으므로 ).. 이 명제에 대해서 지금 내가 현재 이해하는 바를 쓰려고 한다. 

좀 다른 의견도 있었지만, 그 전지전능하신 분이 왜 나에게 고통을 주셨나 에 대해서.. 
고통을 직접 주셨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말하는 바는, 허락하셨다고 표현한다. 
욥기에서 처럼, 직접 , 내가 너를 사랑하니, 고통 한번 느껴봐라. 가 아니라, 나는 널 사랑하고 믿으니 악마가 시험해도 내가 그것을 허락한다.. 라는것이다. 
무슨 차이? 라고 생각하는가?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법적으로 보면, 그게 그거다.  
근데, 여기선 차이가 있다. 하느님께선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고, 그건 악마도 포함된다. 그 뿐만이 아니라, 그런 고통을 겪는 과정이 없으면 우리가 변화할수 없다고 한다.  술병나보지 않은 사람은 옆에서 아무리 토하고 괴로워해도 그 고통을 모르고, 이별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또한 그일이 얼마나 힘든일인지 모르듯 말이다.
나만해도 그전엔 생각깊은듯, 어른스러운 척했지만, 지금보다도 훨씬 더 속물이였다.
아주 어린 신앙인에겐, 하느님이 존재한다는것을 알려주려 기도도 많이 들어주고 그러지만, 어느정도 수준을 지나면 광야에 풀어놓는다는 말이다. "단련" 이라고 많이 표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둘째, 내가 오랜기간 동안 잊고 있었던 크나큰 명제가 있었다. 
천국의 존재여부에 대해서다. 이세상에서 삶이 끝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저 옆사람보다 더 큰 고통을 느끼며 이세상을 마감한다고 느껴도, 삶이 공평하다고 얘기할수있는 이유는, 이 세상의 삶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라는것이다. 영원의 삶이라는 그런 명제안에, 몇십년의 고통은 참아볼만한 것이라는것.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모든 종교에 있는 이 믿음을 왜 난 잊어버렸던것인지..
깊은 신앙인들은 내가 당하는 이고통이 다른사람들을 구원하는데에 쓰일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감사하게 받아들일수 있는 이유가 여기있다. 

솔직히 몇권을 읽으며 고객을 끄덕거리고 깊은 공감을하기도, 어떤말에는 건방지게도 조소를 흘리기도 했지만, 어쨌든 결국은 크게 보면, 고통에대해 제시한 설명은 이두가지 였다.  1. 좀더 성숙한 모습으로 거듭나기 위하여.  2. 죽음너머의 삶을 위하여. 


1번에 대해선 난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난 억울했던게, 좀더 성숙한 모습으로 거듭난 기회를 박탈당한 사람들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많은 고통의 경우에 말이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선 죽음너머의 삶을 제시함으로써 논리를 성립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난 죽음너머의 삶에 대해선 아주 깊이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지옥에 갈것이라고 생각한적은 없지만, 천국에 갈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내가 그토록 시니컬하게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렇다. 
난 천국과 지옥이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안믿고 멋대로 행동하다가, 있다면.. 그래서 몇십년살다가 죽고나니, 진짜 영원이라는게 있다면, ... 그때가서 후회하는것보단, 지금 믿는게 좋지 않은가. 

고통에 대해 말하려고 했는데, 자꾸 종교 전체에 대해서 말하게 된다. 하지만 그점은 말하고 싶다. 나도 아직 확실히 깨우쳤다고 말할수도 없는것임과 동시에 배워가는것에 대해서 말이다..  어떻게 고통을 줄일수 있는가. 

기도하라 기도하라. .. .라고 말한다. 나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일이였다. 
하지만, 왜 나에게 이런일이 라고 원망하는 것은 종교인이든 비종교인이든 딱히 도움되는것은 아니다. 고통을 겪고 있는것은 원인과 결과가 있는 과학적인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에겐, 그것을 어떻게 하면 줄일수있는가가 중요하다. 
신앙의 관점에서 보면, 그 고통을 호소하고, 줄여달라고 간청하고, 줄일수없다면, 그것을 좀더 유익한일에 써달라 라고 기도한다 ... 

솔직히 말하면, 저 얘기 몇년전에 처음들었을때... 장.난. ? 이렇게 받아들였다. 
아니, 말이 되냐 말이다 ..  기도는 도대체 들어주는것같지도 않은데, 뭐? 왜? 
근데 한가지 확실한것은, 기도를 안한다고 고통이 줄어지지는 않는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다고, 그렇다고 해서 악마가 와서 당신에게, 옛다,  하느님 믿지 않으니 내가 물질적인것으로 보상하마.  이러진 않는다는것이다. 

그럴바에, 기도를 하고, 천국에 대한 강한 믿음으로, 내 고통을 줄여볼수있다면 그길을 선택하는것이 낳지 않을까. 

... 시니컬하다. 나도 안다. 이건 뭐, 하느님이 당신의 고통을 없애줄것입니다, 믿쑵니다 한마디만 하세요, 이러며 확신을 심어주는것도 아니고, 이것도 저것도 안될수도 있지만 안하는것보단 낫다.. 이런 별 열정도 확신도 없는소리만 하는것같다. 
하지만, 고통을 겪고 있는 당신도 시니컬하고, 냉소적으로 되어있지 않나. 나만 그런가.  

어차피 이러니 저러니 해도 도움이 안되면, 기댈곳 하나 있다고 생각하고 기대보라 이거다 ...  

책에서는 훨씬더 설득력 있으니 한번 읽어보길 강력 추천한다.




 






 




New Year's Resolution

2011/01/08 15:53 | Posted by being 물고기자리
2011 년이 시작된지도 벌써 일주일이 흘렀다.
작년에는 그냥 흘러흘러 살다보니 참 무의미 하게 한해가 흘러가버렸다. 
그렇게 표류하기 싫어서 올해는 목표를 좀 세워봤다.
반만 이루어도 뿌듯하지 않을까.

1. 책 100 권 읽기   (현재 ... 3/ 100 )

2. 한번에 한 드라마 만 보기  (지금은 시크릿가든이 너무 강력해서 괜찮지만,.. 나중엔 가장 힘들어질수도 ... )

3. 일주일에 최소 한번은 땀흘려 운동하기 

4. 베토벤의 the tempest  외워보기

5. 불어 다시 시작하기


6. 연말에 50명의 사람들에게 안부인사 ( christmas card.. etc )  전하기  

7. 매일 기도하기. 

8. 시험 준비하기.


이외에도 하고 싶은것은 많지만, 운과 돈이 필요한것들 빼고  내 노력으로 할수있는것들만 적어도 꽤 많네 ...

연말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정성스런 안부인사를 전하며,
tempest 를 치고, 불어를 조금씩 배우고 있으며, 좀더 건강한, 좀더 행복한,
그리고 드라마를 좀 덜 모르는 내가 되있길 바라며.


새해에는 그 어떤해보다도 값진 해가 되길, to you and to m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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